무등일보·광주로 공동 심층기획
"당장에 생활비 손벌릴곳 없고 대부업체로"
실업난에 신용불량 전락 이른바 '실신세대'
광주 청년들 10명 중 7명 "부채 부담" 심각
"최악상황 가기전에 전문기관 찾아 상담을"
"누가 처음부터 신용불량자가 되고 싶겠어요. 당장에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손 벌릴 곳은 없고…. 눈 떠보니 무한 대출의 굴레 속에서 빚에 허덕이고 있더라고요."
광주에 사는 20대 청년 정민서(21·가명)씨는 지난해 청년들의 채무와 신용회복 상담을 도와주는 광주청년드림은행을 찾았다. 한달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핸드폰도, 계좌도 가질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명품이나 자동차를 '플렉스'(고가의 물품을 과감하게 구매하는 행위)하려 대출을 받은 뒤 갚지 못한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는 정씨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는 몸이 아파 누워있는 부모님과 좋지 못한 경제상황으로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어 스무살이 되자마자 대학도 포기하고 생산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몸을 다쳐 일까지 그만뒀다.
그는 "일하지 못한 기간에 밀리는 월세와 공과금에 다급했다. SNS에서 지인이 올린 대출 글을 보고 연락했는데 알고보니 불법대출이었다"면서 "800만원 중 수수료로 530만원을 떼였다. 보복이 두려워 경찰 신고도 못하고 도움 구할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결국 대출이자 갚고 생활비는 핸드폰 소액결제로 메꾸다 연체되고 또 불법대출을 쓰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면서 "열심히 살아보려 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광주의 한 사립대에 재학하면서 취업 준비 중인 김희진(24·가명)씨는 이른바 '실신 세대'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실업난을 견디지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요즘의 청년들을 빗댄 표현이다.
김씨는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천만원 가량의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을 받은 상황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세와 생활비를 내면서 악착같이 구직에 전념하는데도 기업 문은 도통 열리지 않는다. 김씨는 신용대출을 받아 취업에만 전념할 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부모님이 지원해 준 친구들은 서울에 올라가 취업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저만 뒤떨어지는 것 같아 무서워요. 근데 취업한다 하더라도 대출금 갚고 집 구하려면 또 빚질텐데…. 애초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게 잘못인가요"라며 김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1일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9세 이하 가구주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32.5%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전년보다 3.4%p 늘어났고 4년 전인 2017년에 비해서는 8.3%p 늘었다. 또 최근 5년간 모든 연령대에서 유일하게 20대만 자산 대신 부채가 증가했다. 취업난에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월세나, 생활비, 취업 준비 비용 등이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20대의 신용대출도 급격히 늘고 있는데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5조원대였지만 12월에는 40% 이상 늘어난 7조5천억원에 달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청년실업률이 9.5%p 오르면서 청년들의 빚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러면서 최근 3년 동안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청년층도 계속 늘고 있는데 지난해엔 2만8천명을 넘었다.
이처럼 이미 빨간불이 켜진 청년 부채에 코로나19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의 부채 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거나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고정적인 수입원이 끊기자 조건은 최악이지만 접근이 쉬운 대부업체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청년들에게 부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광주청년드림은행에 따르면 청년들의 신용상태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더욱더 위태로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광주청년드림은행에서 상담을 완료한 377명 가운데 105명(27.9%)의 청년이 3개월 이상 대출 연체 중인 '신용 유의'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 11.6%의 2.5배나 되는 수치다. 특히 청년 부채의 단면을 보여주는 통신요금 연체 문제로 이곳을 찾은 청년의 비율이 1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신 결제는 신용이 없어 제도권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생활비를 마련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과 비대면의 일상화로 청년들이 모바일상에서 불법 대출 광고에 쉽게 노출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금리 대출에 손을 내미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해 전체 상담 완료 인원 중 10.8%에 해당하는 41명의 청년이 불법 금융 피해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구제대출, 지인사기, 작업대출, 사채, 보이스피싱, 다단계 대출사기 순으로 그 빈도가 높았다.
아울러 부채를 갖고 있는 지역 청년 10명 중 7명이 부채로 인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광주시가 광주에 거주하는 청년(만 19세~39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광주청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채로 인한 부담 정도를 알아본 결과, 매우 부담 26.1%, 다소 부담 45.8%, 보통 24.6%, 별로 부담 없음 3.5%로 응답자 10명 중 7명(71.9%) 정도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주세연 광주청년드림은행장은 "청년들이 코로나19 여파로 고정적인 수입원이 끊기면서 조건은 열악하지만 접근이 쉬운 대부업체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인터넷에서 주로 정보를 얻는 청년들의 경우 모바일상에서 불법 대출 광고에 쉽게 노출되므로 해당 광고 규제 강화 등 지자체의 관리감독과 적극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나오고 있는 청년 정책들이 더욱 확대되고 꾸준히 지속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부채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부채 문제를 혼자서 판단하다 보면 좁은 시야로 인해 빚을 빚으로 막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면서 "상담 기관을 찾아 전문가와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특별취재팀=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이삼섭·임장현기자
[청년소멸보고서ㅣ인터뷰] "청년을 위한 정책·지원 지속성 보장돼야"
주세연 광주청년드림은행장
부실한 사회제도·안전망 부재 복합적 원인
코로나로 고정 수입 떨어져 상황 더 악화
장기적이면서도 상시적인 지원정책 필요
"청년 부채는 청년 개인의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닌 부실한 사회제도와 사회 안전망 부족 등과 같은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물입니다. 청년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련 청년 정책의 확대는 물론 지속성도 보장돼야 합니다."
주세연 광주청년드림은행장은 1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청년 부채' 문제에 대해 이같이 진단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지목된 청년 부채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구조의 병폐 속에서 자라왔다"며 "이미 경고등이 켜진 청년 부채에 코로나19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은행장은 "청년 부채는 '사회적 부채'라고 명명할 수 있다"며 "이는 청년 개인의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닌 고용·주거·의료 등의 제도 부재와 부실한 복지제도 등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사회적 안전망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통해 보장해야 할 부분을 청년 개인이 대출 등을 통해 메꾸면서 청년 부채 증가율이 타 연령층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고학력자들이 경쟁력을 갖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청년들에게 대학은 필수재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를 위한 비용은 청년들의 몫으로 넘겨지고 있다는 게 주 은행장의 지적이다. 그는 "가진 자산이 없거나 부채를 가진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자리로 몰리게 되고 다시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인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가족 중심의 기존 복지체계를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가족 중심으로 설계된 복지 제도 안에서 청년을 바라보면 결국 '가족의 문제'로 치부될 뿐이라는 것이다.
주 은행장은 "개인을 독립된 시민으로서 바라보며 이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가족이 없더라도 사회가 안전망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들이 복지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금융 약자인 청년들이 불법 대부업체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주 은행장은 "청년들이 코로나19 여파로 고정적인 수입원이 끊기면서 조건은 열악하지만 접근이 쉬운 대부업체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인터넷에서 주로 정보를 얻는 청년들의 경우 모바일상에서 불법 대출 광고에 쉽게 노출되므로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주 은행장은 부채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부채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선 혼자서 고민하기보다 전문기관을 찾아 현재 피해 상황을 살피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광주청년드림은행의 경우 일대일 맞춤형 상담을 진행하므로 다시 경제생활의 시작점에 서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광주청년드림은행은 돈이나 빚 문제로 고민하는 지역 청년들이 각자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맞춤형 상담 서비스를 통한 신용 회복 지원과 경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 및 자세한 내용은 전화나 홈페이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광주청년금융114'로 문의하면 된다.
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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