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곡의 빌미 제공한 대학교수의 하잘것 없는 잡문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입력 2020.12.14. 12:55

철학교수인 최진석 교수가 며칠 전 국회에서 통과된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비판하는 시 '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썼다. '역사는 논픽션'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최진석 교수는 법조문의 내용, 법의 제정 배경,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전개된 토론과 수정 내용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시를 썼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가 전공하는 도가 철학처럼, 인위적인 규율이나 규제를 싫어하는 평소 소신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시를 쓴 배경과 동기가 어디에 있든 그는 너무 많이 나갔다. 그가 가진 지명도 때문인지, 혹은 그가 광주 출신이고 5·18을 경험했다고 말하였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보수 언론과 극우주의자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그의 발언을 안주 삼아 '5·18 처벌법'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아니 '5·18 처벌법'을 비판하는 형태로 5·18과 광주를 모독하기 시작했다.

최진석 교수가 쓴 글 중에 "가장 탁월함은 물과 같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솔직히 그의 시에는 그의 전공인 노장사상의 흔적도, 5·18에 대한 애정도,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인사들에 대한 그 어떤 예의와 성의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표현의 자유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5·18 처벌법'을 비판하고 싶었다면 시가 아니라 그의 특기인 글을 통해 좀 더 논리적으로, 좀 더 진정성을 갖고 주장을 펼쳤어야 했다.

'5·18 처벌법'은 5·18에 대한 학문적 연구나 예술적 창작행위, 일상적인 토론의 내용까지 모두를 규제하고 처벌하는 게 아니다. '북한군 침투설'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반복적이고 조직적으로 허위 주장하여 광주시민을 모독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대한민국 국방력을 깎아내리는 식의 극히 불온한 행위만 처벌하는 법이다. 만약 이 법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위반했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면 누군가 위헌소송을 제출하여 헌법재판소의 심의를 받을 것이다. 법원에서도 5·18에 관한 언행이 설령 비판적 내용이라 하더라도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면 처벌을 면해줄 것이다.

어떤 분은 역사왜곡처벌법을 제정하려면 5·18로 한정할 게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법률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검토해볼 만하다고 본다. 이번 '5·18 처벌법'을 시행해보면서 그 장단점을 검토하여 일반적인 법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이다. 그런데 이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이번 '5·18 처벌법'은 의미가 있다. 과거 5·18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 운동은 5·18에 대한 진실규명에 그치지 않고 4·3항쟁, 부마항쟁 등 우리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에 대한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 운동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만약 5·18과 같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법이 필요할 경우 이번 법은 그런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나는 1980년 5·18 때 멀리 백령도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즉 5·18현장에 없었다. 또 나의 주 전공은 독일 현대사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전남대 '5·18 연구소장'(2004-06)을 맡게 되었다. 5·18 연구소장으로 있는 동안 전남대 교양과목으로 '5·18항쟁과 민주·인권'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6년가량 직접 강의를 했다. 수강생이 증가하여 매 학기 세 개 반씩을 개설했다. 나는 5·18 강의에서 시민들의 용감성, 높은 시민의식, 5월 27일 밤의 장렬한 산화 등 세 가지 특징을 특별히 강조했다. 세계사 전공자로서 5·18은 20세기 후반 지구상에서 발생한 수많은 민주화운동 중 가장 빛나는 세계사적 사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5·18에 담겨있는 가슴 뭉클한 사연들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켜 소설, 시, 영화, 뮤지컬, 그림 등 문화예술작품의 영원한 소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최진석 교수의 시와 글은 위대한 5·18 앞에서 그냥 하나의 '하잘것없는' 잡문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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