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달빛동맹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하며

@박성수 광주전남지역혁신플랫폼 총괄운영센터장 입력 2020.03.25. 11:27

지난 97년 어느 날이었다. 지역 일간신문 편집국장 한 분이 전화를 걸어 왔다. 당시 전남대학교 기획처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이날 뜻밖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내용인즉, 영호남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묘안으로 대구와 광주의 청년들을 상대 지역대학에 다니게 하자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되면 서로를 진정으로 잘 알게 되어 양 지역이 화합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정이 들면 영호남 커플도 많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볼 수 있다면서.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 정서가 다른 지역의 학교에 진학한다는 자체가 모험이기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일 년 정도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다녀가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듯 싶어 그분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실행에 옮기게 되었고, 그 결과 20년 넘게 현재까지도 시행 중인 전남대-경북대 교환학생프로그램은 성공적인 사례로 회자 되고 있다.

필자는 대구 경북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남도의 맛과 멋을 흠뻑 느끼고 가게 했더니 우리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되었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종종 소식을 전해 오는 애제자들로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을 나누어 오고 있다. 그리고 경북대 친구들 덕분에 대구와 경북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나머지 2003년 가을, 대구 경북지역의 산업계, 학계 인사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필자 주도로 창립한 광주지역의 산학협동연구원에서는 그해 대구 지역의 산학연구원 회원들을 초청, 1박 2일 동안 뜻깊은 행사를 하였다. 첫날은 빛고을의 대학과 산업체 현장을 방문하였고, 저녁에는 합동으로 산학협동포럼을 마련, 양 지역경쟁력 강화방안을 논의하였다. 그리고서는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며 영호남 간의 우의를 다지는 만남을 갖게 되었다. 다음 날은 인근 전남지역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초청을 받아, 시·군현황 설명을 듣고 명소를 돌아보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해마다 봄이 되면 영호남의 명산을 찾아 함께 산행하면서 상호 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영호남간의 지속적인 왕래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양 지역을 오고 가면서 끈끈한 정을 쌓아 왔다.

그러던 중, 참으로 반갑게도 지난 2009년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는 영호남의 화합과 상생발전을 위해 이름하여 달빛동맹을 맺었다. 달구벌의 달과 빛고을의 빛을 딴 달빛은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시·도민들이 부르기 좋은 명칭이 되어 이제는 달빛고속도로, 달빛내륙철도 등 대구와 광주를 아우르는 대명사로 애용되고 있다.

1960년 대구의 2·28 민주운동과 1980년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은 두 지역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데, 이들을 함께 보듬는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광주에는 228번, 대구에는 518번 시내버스가 개통되어 다니고 있다. 최근 코로나 19가 심각하여 병상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대구 경북지역의 환자들을 제일 먼저 조건 없이 받아들인 광주시의 모습은 아름다운 달빛동맹의 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1일 이용섭시장이 광주공동체특별담화문에서 언급한 대목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1980년 5월, 고립되었던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해 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입니다." 대다수의 광주시민은 이를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였고, 일부 시민들은 오히려 때늦은 조치라며, 지방정부의 늑장 대응을 나무라기도 하였다.

광주의 산학협동연구원에서도 이에 부응하여 대구의 산학연구원에 손소독제 600상자를 보내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 대구회원들은 이 물품들을 여건이 취약한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며 감사의 뜻을 보내 왔다.

광주와 전남에서 치료받고 완치되어 고마움을 가득 안고 떠나는 대구와 경북인들을 보며 어서 빨리 달빛철도가 개통되어 두 시간 내로 가벼운 마음으로 오고 갈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박성수(미래남도연구원장·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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