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조지아를 찾은 러시아 작가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4)
인생
사는 게 무어라고
되돌아보면
낙엽이 몇 번인가 떨어지고
거칠게 내리다가
금방 사라지는
한갓 눈 발 같은 시간이거늘
죽을 듯 사랑하고
죽을 듯 미워하고
가지고 갈 무엇도 없는데
무얼 그리 차곡차곡 쌓아 놓은지
비겁한 비수를 품고
무지개 단칼에 사라지는 언덕에
늙은 고목이 되어 서본다
언 땅 헤치고
흙 한 움큼 쥐어
허공에 뿌린다
달빛에 기대어 풀잎을 쓰다듬는
저녁
언덕에 앉아
그대가 떠나간
먼 길을 바라본다
그림자만
내 곁에 앉아있다
(한희원의 시 ?인생- 전문)
봄! 얼마나 가슴 뛰는 단어인가. 가을은 왠지 스산하고 마음의 깊어짐을 느끼지만 봄은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된 만남처럼 설레 인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는 꽃이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2월초인데 벌써 꽃망울이 맺혔다. 성미 급한 꽃은 잠깐 머무는 햇살에도 몸을 드러낸다. 얼어붙은 눈 더미 사이에 핀 노란 복수초는 하얀 눈보다 더 차갑고 눈부시다.
잔설 속에 핀 섬진강의 매화는 또 어떠한가. 눈바람에 매화꽃이 떨어져 난무하면 그 잔혹한 아름다움에 나도 너도 다 같이 군무속의 꽃이 된다. 조지아에서는 매화보다 늦게 개화하는 체리꽃이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트빌리시 거리에서 하얀 체리꽃잎이 안개 빛으로 피어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터키에서 흘러나와 조지아를 거쳐 카스피해로 가는 쿠라강변(조지아에서는 므트크바리)의 체리꽃이 섬진강변의 매화인양 정겹다.
조지아에서 맨 처음 쿠라강변을 마주하고 그 고운 모습에 넋을 잃었다. 사람의 손길이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강,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강변에 무더기로 핀 하얀 체리꽃 무리.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지 않은 이곳 쿠라강을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처럼 걸을 수 있는 길로 조성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조지아를 찾은 러시아의 작가들도 쿠라강의 이런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까.
카프카스의 포로 중 제10연
포로는 아무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였고
이미 비참한 생활에 익숙해져서
포로의 설움과 뜨거운 분노를
영혼 깊숙한 곳에 숨겨버렸다
서늘한 기운 감도는 이른 새벽이면
족쇄를 찬 채 험준한 암벽 사이를 거닐며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잿빛, 붉은빛, 푸른빛아 어울러져 빛나는
아득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장엄한 광경이다!
만년설로 덮인
왕좌 같은 봉우리들은
미동도 없는 구름의 사슬처럼 보였고,
그들 사이에 우뚝 솟은 쌍봉인
거대하고 장엄한 엘브루스산은
반짝이는 얼음 왕관을 쓰고,
쪽빛 하늘에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
폭동을 알리는 뇌우가
천둥과 뒤섞이며 노호할 때면,
포로는 얼마나 자주 산마루에 꼼짝 앉고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했던가!
(중략)
(코카서스 3국 문학산책 허승철역 29-30쪽)
푸시킨은 1820년 두 달간 라예프스키 가족과 여행을 한 후, 그 해 8월에는 크림반도를 여행했다. 크림반도에서 9월까지 지내며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라는 시를 썼다. 이후 지금의 몰도바의 키시나우(Kishinau)에서 유형기간을 마쳤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이 기간에 쓴 푸시킨의 작품을 '남방시'라고 부른다. 1820년부터 1821년 사이에 쓴 '카프카스의 포로'를 1822년에 발간한다.
푸시킨은 러시아 터키 전쟁 때 장교들과 함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방문한다. 이때 쓴 여행 수필집이 '아르주룸으로의 여행'이다. 푸시킨은 러시아로 돌아와 아름다운 부인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염문을 뿌리던 단테스와의 결투로 인해 생을 마감한다. 푸시킨은 남방지역을 여행하며 각 지역마다 자취를 남겼다. 트빌리시, 예레반(아르메니아 수도), 바쿠(아제르바이잔 수도), 크림반도에는 시인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푸시킨을 흠모했던 시인 레르몬토프는 푸시킨의 죽음을 주제로 한 '시인의 죽음'이란 시를 쓴 죄로 전쟁 중인 카프카스에 파견된 후 생을 마감한다. 조지아는 이 위대한 시인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곳이다.
푸시킨이 떠나고 이번에는 톨스토이가 조지아의 트빌리시를 찾게 된다. 조지아를 찾은 톨스토이를 기다리고 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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