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마치 성지순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 주변이나 도시의 중요한 곳에 어김없이 조지아 정교회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AD 31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 유서 깊은 곳곳에 기품 있는 조지아 양식의 성당을 지었다. 그 당시 왕들은 신 앞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성당을 건축하는 것을 큰 업적으로 여겼다.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의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조지아에 있는 여러 성당 중에서도 아름다움과 규모, 그리고 성당을 건축하기까지의 신화가 가장 풍부한 곳이다.
성녀 니노는 조지아의 첫 교회 부지를 아라그비강과 므트크바리(쿠라)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결정했다.
이 성당은 AD 4세기경 카르틀리(이베리아)의 왕 미리안 3세 때 처음으로 건축되었다. 아랍, 페르시아, 티무르의 침입으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이후 5세기 바크탕 1세 고르가살리 때 재정비되었다.
은은한 황사석과 녹색 돌로 조지아식 크로스 돔 형식으로 지어져 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심 깊은 수도사의 침묵의 기도처럼 성스러운 기품을 지니고 있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신비한 전설을 두 개나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예수의 성의를 보관하고 있다는 전설이다.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현장에는 조지아 므츠헤타 출신의 유대인 엘리아가 있었다. 엘리아가 로마 군인에게 예수의 피 묻은 옷을 사서 조지아로 돌아왔다. 그의 여동생 시도니아가 피 묻은 예수의 옷을 보고 감정이 극도로 격해진 나머지 성의를 붙잡고 죽고 만다. 죽은 후에도 그 옷을 꼭 쥐고 놓지 않아 성의와 함께 시도니아를 매장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무덤에서 거대한 향나무가 자라났다.
성녀 니노의 전도로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한 미리안 3세는 거대한 향나무를 베어 일곱 개의 기둥을 만들어 12사도의 교회를 지으려 한다. 그러나 베어낸 향나무 기둥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진다. 성녀 니노가 간절히 기도를 올리자 기둥이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기둥에서 액체가 흘러나와 병을 치료하는 기적을 보인다는 전설이다.
특이하게도 성당 안에는 석조로 된 작은 교회가 지어져 있다. 교회 안의 교회는 예수의 겉옷이 소장되어 있는 성지임을 알리고 있다. 성당 안 성화에는 천사가 된 니노가 향나무 기둥을 들고 있다.
그림 아랫부분 오른쪽에는 미리안 왕, 왼쪽에는 왕비 나나가 그려져 있다. 이 성화가 1880년대 미하일사비닌 작의 '이베리아의 영광'이다.
또 하나의 전설은 11세기 게오르기 1세 때 성당 건축을 완공했던 건축가 아르수키드제에 관한 것이다. 성당의 북쪽 외부 벽면에는 석공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 오른손에는 석공을 상징하는 끌을 들고 있는데 '아르수키드제의 손. 하나님의 종 그의 용서를 바라며'라는 비문이 끌에 새겨져 있다.
조지아의 소설가 콘스탄티네 감사쿠르디아는 이 소재를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는 게오르기 왕이 아르수키드제의 연인으로 미모가 뛰어난 쇼레라를 흠모한다. 아르수키드제의 후원자였던 사제가 아르수키드제의 성공을 시기한 나머지 왕에게 거짓을 고해 그의 손을 자르게 한다. 왕의 질투심을 부추겼던 것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전설이 붙어있기 마련이다. 조지아를 통치했던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성당.
그들의 시신이 성당의 바닥에 안치된 곳, 예수의 피 묻은 겉옷이 보관된 곳으로 알려지고, 뛰어난 성화(진품은 조지아 국립박물관에 보관)가 빛을 발하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성당을 나오면서 눈부시게 맑은 조지아의 하늘이 더 푸르게 느껴졌다. 성스러운 영혼을 닮은 구름 한 점이 성녀 니노의 기도 소리로 변해 지상으로 드리우고 있었다. 성당을 뒤로 하면서 성당의 벽면에 새겨진 글귀가 오래도록 마음 안에 남는다.
"성당은 당신의 불쌍한 종, 아르수키드제의 손에서 지어졌습니다. 오 주여, 그의 영혼이 이곳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소서."
성스러운 신화와 작별을 하고 조지아의 조르바가 만든 와인을 받아 들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 같은 아라그비 강을 따라 오늘도 또 다른 길을 향해 떠난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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