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람에 몸을 가누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풍경이다
붉은 석조로 지은 집들 사이로 서 있는
푸른 나무들. 마을 너머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고산이 아스라하다
한참동안 풍경에 취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수도원과
수백 년을 묵묵히 살아가는
큰 나무 아래에 가면 자신도 모르는
힘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커피색의 빗물
낡은 회색이 걸어와 내 곁에 앉는다
그의 눈빛이 내 슬픔의 중심으로 다가온다
방과 방 사이에 켜있다 사라진 숱한 별빛들
나는 서성거리다 멈추고
서성거리다 멈춘다
진한 커피색의 빗물이 회색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몸이 낡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간다
몸으로 부터 점점 영혼까지
쓰디쓴 소주보다 독한 아침 커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 사람들
거리에는 가을이 아닌데도 낙엽이 뒹군다
기다리지 못하고 커져버린 등불들
스산한 기약하나 떠나지 못하고 등불아래 앉아있다
(한희원의 시 '커피색의 빗물' 전문)
오랜 세월동안 흐르는 강에는 역사가 깃들기 마련이다. 그 강의 규모가 크고 굽이굽이 돌아긴 강의 모습을 갖추면 주변에 형성된 문명도 방대해진다. 어머니 자궁 같은 높고 깊은 산에서 흘러나와 산자락을 휘몰아치듯 감아 도는 강과 대륙의 도시와 들녘을 마음껏 휘젓고 가로지르는 강이 만나는 곳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서려있다. 곳곳에서 흩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영적인 기운이 감도는 강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새로운 문명이 싹트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다.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와 즈바리 수도원은 이런 성스러운 영혼이 꿈꾸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터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까지 가는 므츠바리 강과 카즈베크 산에서 흘러나온 아라그비 강이 만나 두물머리를 이룬 곳이 므츠헤타이다.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카즈베기나 고리로 가는 길에 높지 않은 즈바리 산(656m)이 보인다. 산 주위가 사방이 확 트이고 깎아내린 듯한 절벽 위에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작은 수도원 즈바리.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견고하게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작은 거인의 풍모 같다. 멀리에서도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즈바리 수도원이다.
바람이 미는 대로 몸을 맡기며 산길을 따라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1500년 전 짙은 암갈색 석조로 지은 작은 수도원. 예상했던 대로 바람이 거세어 몸을 가눌 길이 없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는데 비해 조지아의 수도원은 바람막이조차 없는 산자락에 있어서 온갖 세파를 견디어 낸다. 세상의 모든 죄를 홀로 짊어진 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처연한 모습이다. 199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즈바리 수도원.
수도원을 오르는 돌계단에 서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 갈래의 강줄기 주변으로 형성된 므츠헤타가 보인다. 거친 바람에 몸을 가누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풍경이다. 붉은 석조로 지은 집들 사이로 서 있는 푸른 나무들. 마을 너머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고산이 아스라하다. 마을 중앙에는 규모가 큰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보인다. 마을 주위로는 강이 돌아 흐르고 있다. 한참동안 그 풍경에 취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수도원과 수백 년을 묵묵히 살아가는 큰 나무 아래에 가면 자신도 모르는 힘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즈바리 수도원 안은 작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존재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어둠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드린 기도 속 영혼들이 떠나지 못하고 내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춤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움직임도 없는 침묵의 춤이다. 눈 먼 수도사의 기도이다. 아, 바람이 세차 두 눈을 멀게 하고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고독의 즈바리 수도원.
즈바리 수도원은 원래 '즈바리의 위대한 교회' (Great church of jvari)로 불리었다. 처음에는 이교도의 기도처였는데 6세기(545년)에 에리스 므타바리 스테마노스 1세에 의해 지어졌다. 수도원 주위에는 석조로 된 성벽이 둘러져 있어 중세 말에 이곳이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성벽이 허물어져 일부만 남아 교회를 감싸고 있다.
조지아의 기독교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성녀 니노(Saint Nino)이다. 성녀 니노는 카파도키아의 난민이었다. 노예 출신으로 수녀가 된 니노는 신의 계시를 받아 조지아로 들어와 므츠헤타의 유대인 지구에 머물며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니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포도나무에 묶어서 십자가를 만들었다. 니노가 조지아왕을 개종시킨 후 바위산 꼭대기에 포도나무 십자가를 세웠고 이곳에 지은 교회가 즈바리 교회이다. 그래서 즈바리 교회의 중앙에는 성녀 니노를 상징하는 포도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조지아의 초기 기독교 전파 시절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가 영험을 얻어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례의 길은 쉼 없이 이어지고 천년이 훌쩍 지난 오늘도 순례자들은 이곳에 와 침묵의 기도를 드린다. 지금까지 수도원으로 불리는 이 건물이 유일하게 중세 초기 조지아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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