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같은 막걸리·고구마 숙성 소주 '외길 34년'

입력 2021.08.19. 18:15 박혁 기자
[해남 송우종 발효 명가]
알맞은 향·당도 숙취 없어 전국 인기
고구마·울금 등 지역 농산물로 생산
비법 찾아 문헌 살피고 연구소 탐방
최연소 명인 이어 세계 명인 2020호
막걸리발효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전통막걸리와 발효식초가 세계의 명품 브랜드가 되는 그날까지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겠습니다."

지난 2012년 지리적표시에 등록된 자색고구마를 이용해 와인같은 막걸리를 만들어 특허도 출원한 해남의 송우종 발효명가.

발효효모 60여 종이 숨쉬는 참사리 막걸리를 만드는 송우종 발효명가의 송우종 대표는 34년째 발효 식품을 만들고 있는 업계의 대가다.

송 대표는 발효 식품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발효식품은 미생물의 대사작용을 거치면서 복잡한 물질이 간단한 물질로 분해돼 우리 몸에서 소화·흡수가 빠르고, 수많은 미생물 중에서 유익한 미생물만 살아서 우리가 바라는 작용을 한다"며 "발효 식품은 장기간 보관하면서 맛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맛이 변하지 않는 안전한 식품이며, 그 맛을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감칠맛을 지닌 것도 발효식품의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 오랜 연구로 좋은 막걸리 생산

송 대표는 지난 1995년 해남군 옥천면에 회사를 차린 후 고구마·울금을 활용한 막걸리와 모주, 전통발효식초를 비롯해 증류주인 주랑게를 출시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송 대표는 양조장에 꼬드밥 기계와 누룩증식기, 증류기, 순간살균기, 병정렬기, 병세척기 등 12종의 막걸리 생산 장비를 갖추고 연간 5천853톤의 막걸리와 282톤의 증류주, 912톤의 발효식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최신식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 해남 특산물인 고구마·울금·쌀을 이용해 자색과 노란색, 흰색의 막걸리를 출시해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일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쌀막걸리와 고구마막걸리, 울금막걸리, 초당옥수수막걸리 등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면서 지역농민과 상생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에는 쌀과 누룩을 50일 발효시킨 13도의 막걸리 '황금주'를 출시한데 이어, 최근에는 황금주 제조방법에 40일 숙성한 쌀과 초당옥수수 원액 15%를 첨가해 다시 10일간 숙성하는 등 50일간의 발효시켜 만든 17도짜리 막걸리도 개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막걸리는 기존 막걸리와는 달리 60일 동안 냉장보관이 가능해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지치지 않은 끈기와 노력이 열쇠"

송 대표는 발효식품 연구가 답게 사무실 한 편에 실험실을 뒀다. 이곳에서 막걸리와 지역 특산품을 연구, 다양한 막걸리와 식초, 모주 등을 탄생시켰다.

자색고구마와 밤고구마·쌀 등을 주원료로 빚은 '고구마 막걸리'는 향과 당도가 뛰어나며 뒤끝이 깔끔해 지역 대표 히트상품이기도 하다.

송 대표는 "선조가 고구마로 농주를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구마 막걸리를 재현하고 싶었다"며 "색과 맛을 내는 데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빛깔 고운 막걸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누룩 종균과 3가지의 종균을 분리 배양해 조화로운 맛을 내는 송 대표의 특별한 비법은 색다른 막걸리를 찾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끈기다. 특히 그는 오래된 문헌을 살피고 술과 관련된 기관과 연구소를 찾아 다니며 끊임없이 배워 나갔다.


◆ 다양한 발효 주류로 확산

50일 숙성 무첨가제 13도 막걸리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변화를 시도하는 송 대표의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09년 우리나라 전통 막걸리분야 최연소 '대한 명인'으로 선정된 이후 2012년 제327호 농·식품부 신지식인 선정됐으며, 2014년 송우종 발효명가를 설립해 본격적인 연구와 생산에 돌입했다.

이후 지난 해 월드마스터조직위원회에서 세계명인 2020호로 선정됐으며, 올해는 대한민국한식포럼 한식대가에 선정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송 대표는 식초 개발에도 매진해 옛날 부뚜막에서 식초를 만들던 방식을 재현해 자색 고구마를 6개월간 숙성시켜 만든 식초 원액에 블루베리, 복분자, 오미자 등 천연원료가 들어간 고구마 식초음료 '젊음초'를 개발했다.

해남 자색고구마를 원료로 한 '고구마 모주'도 만들어 냈다. 해남 발효식품 연구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송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키워오다가 농촌체험용 가양주 제조기술 시범사업을 통해 고구마 모주 레시피를 개발했다.

해남 고구마모주는 고구마 막걸리에 생강과 계피, 대추를 비롯해 송 대표가 직접 생산하는 현미식초를 넣고 끓여서 만든다. 알코올을 모두 없애기 위해 다른 모주보다 제조기간이 3일이 더 걸리지만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2014년에는 쌀 60%에 자색고구마 40%를 섞어 전통 증류방식으로 만들어낸 고구마 소주 '주랑게'도 출시했다. '주랑게'는 일반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럽고 혀 끝에 감도는 향이 남다르다.

송 대표는 "일반소주에는 첨가제가 30여가지 들어가지만 주랑게는 유기물로만 이루어진 전통소주를 만들었다"며 "전통방식으로 고두밥을 지어 한달간 발효 후 증류하고, 70~80도의 술에 정제수를 혼합해 19.5도로 출시했다.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또 '주랑게'와 함께 만든 '옥산주'는 쌀과 누룩을 3개월 발효시켜 증류한 후 1년 이상 보관해 출하는 40도 증류주다. '옥산주' 역시 최근 많은 소비자들이 찾고 있다.

송 대표의 큰아들 창원(33)씨도 조선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2015년부터 송 대표 뒤를 이어 4대째 발효식품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송 대표는 "지난 34년 동안 막걸리만 팔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며 "전남의 전통 막걸리가 대한민국의 명품브랜드로 발돋움하고 해남 쌀과 농산물을 활용한 술을 더욱 다양화해 해외에서도 각광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남=박혁기자 md181@mdilbo.com


-1986년 겸백주조장 설립

-1995년 옥천주조장 설립

-2008년 불두막식품영농조합법인 설립

-2009년 대한명인 제09-247호(전통 막걸리)부문 "명인" 지정

-2010년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대상" 수상

-2010년 전남도청 주최 전라남도 대표 쌀막걸리 "최우수상" 수상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 "신지식인상" 수상

-2013년 전남도청 주최 전라남도 대표 쌀막걸리 "우수상"(한눈에 반한 막걸리) 수상

-2014년 송우종발효명가 설립

-2020년 세계명인 2020호 월드마스터조직위원회

-2021년 대한민국 한식포럼 한식대가 선정


고구마·울금막걸리 히트 "술 때문에 인생 피었다"

[해남 송우종발효명가의 송우종 대표]

학업 작파·방황하다 3대째 가업 이어

미생물·양조학 열공 '막걸리 인생' 활짝

고구마, 울금 등 지역의 특산품을 활용한 막걸리로 전국적인 히트를 치고 있는 해남 송우종발효명가의 송우종(57) 대표.

송 대표는 '양조업 3대 째'라는 타이틀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송 대표는 광양에서 2대 째 양조업을 하는 집안에서 2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크게 방황하면서 7번이나 다른 학교를 전전했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송 대표의 아버지가 보성 겸백의 한 양조장을 인수해 운영을 맡기면서 그의 막걸리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유 없는 반항을 이어가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러다 겸백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3대째 양조장을 운영하는 가업을 잇는 단추가 된 것이다"고 밝혔다.

26세에 양조장을 인수한 뒤에도 양조장 운영보다는 대외 활동에 치중했다. 그러다 2년도 못 가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더니 직원 급여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송 대표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장 먼저 양조 기술자, 도지가 회사를 그만뒀고, 배달원들도 하나둘 씩 떠났다"며 "생계가 막막해진 다음에야 정신이 번쩍 들어 일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밤에는 미생물학, 양조학을 공부하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발효실 온도를 체크하는 등 오만가지 허드렛일을 혼자서 처리했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양조장 일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진도의 양조장을 인수했다. 자신도 모르게 발효에 빠져 중독돼 가고 있던 것이다.

진도 '금갑양조장'을 인수해 아내와 둘이서만 운영하다 해남 옥천 양조장을 인수했다.

송 대표는 "물, 재료, 온도, 타이밍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로 변해가는 효모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돼 대형 주조회사 부설연구소, 배상면연구소, 세계적 효모 생산의 권위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회사까지 찾아 다니며 묻고 배우는 즐거움에 빠졌다"며 "책을 끼고 살면서 실험실에서 밤을 보내는 날이 늘어났다. 뒤늦은 학구열 덕분에 졸업하지 못했던 고등학교도 49세에 검정고시를 합격하는 한도 풀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고민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막걸리는 금방 입소문이 퍼져 인기가 높아졌다. 2009년에는 송 대표의 역작이라 할 수 잇는 해남의 자색 고구마를 이용한 '고구마 막걸리'를 출시했다.

그는 "항산화와 노화 방지에 효능이 있는 와인 색깔을 내는 안토시안 색소가 포인트인 고구마 막걸리는 수년 동안 수백회를 실험하며 만들었다"며 "한류 열풍 덕에 일본 수출 길도 열리는 호재도 만났고 같은 해 '막걸리명인'(제 09-247호)칭호도 받았다"고 밝혔다.

식초 개발에도 나서 쌀 식초와 고구마 식초, 참다래 식초도 연달아 출시했다.

송 대표는 "제가 보유한 막걸리명인 전수자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옥천주조 공장장이고, 다른 사람은 제 맏아들이다"며 "아들이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을 잇겠다며 함께 일하고 있다. 4대째 가업을 잇는 셈이어서 다행스럽고 대견한 일이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막걸리만 팔려고 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며 "전남의 전통막걸리가 대한민국의 명품브랜드로 발돋움할 때까지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해남=박혁기자 md181@mdilbo.com

슬퍼요
1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