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부동산 망국 퇴치법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31. 10:40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근본적 이유는 정권 초기에 토지로

인한 불로소득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선언을 하지 않았고,

토지보유세를 강화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저런 미시적, 금융적 규제로

불을 끄려고 하다가 불길이 잡히지 않고

더 크게 번지자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종부세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시기적으로 이미 너무 늦었고,

시장의 신뢰를 잃고 난 뒤였다

부동산 투기의 망국병을

치료하는 처방은 분명하다.

토지보유세 강화(단, 현금 없는

노인에게는 납세 연기), 그리고

공직자에게는 부동산 백지신탁,

그리고 공급확대론이라는 미신에

속지 않을 것, 세 가지가 근본이다

최근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 부친의 세종시 농지 매입 건이 도하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윤희숙 의원은 작년 임대차 3법을 국회에서 반대하면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해서 국민들 사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선 의원이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이유는 주로 그 연설 때문이었고, 첫 마디가 파격적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실은 2주택 소유자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면 첫 마디를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부친이 농지를 구입한 것도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풍진 세상에 찌든 많은 도시인들이 늘그막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은 꽤나 아름다운 풍속이다. 그러나 윤의원 부친의 경우는 다르다. 고향도 아니고 왜 하필 세종시인가. 어떻게 80 노인이 300평도 아니고 3천300평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상식을 가진 사람은 납득하기 어렵다. 농사를 짓지 않는 외지인들이 투기적 이익을 노려 농지의 상당 부분을 매입하는 바람에 농업과 분배에 미치는 악영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재지주의 폐단이 극에 달했던 신생 대한민국에서 농지개혁이 이루어진 것은 신생 독립국에서 보기 드문 쾌거였는데, 이는 전적으로 공산당 출신 농림부 장관 조봉암과 차관 강정택의 분투노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농지개혁을 해낸 지 70년 만에 그 개혁적 의미가 크게 퇴색해버렸고, 부재지주들이 투기적 이익을 노려 전국 땅을 휘젓고 다닌다. 작년 LH사태가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낸 것도 그것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부동산 왕국 대한민국의 축약도가 윤희숙 의원과 그 부친에서 발견된다.

8월 29일에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부동산, 주택 공약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공급 위주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수요 억제, 지나친 규제 때문에 실패했다고 규정하면서 공급 확대, 세금 및 규제 완화, 재개발, 재건축 촉진 등을 주요 메뉴로 제시했다. 이런 정책이 과연 부동산 투기의 광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 천만에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은 온 국민이 동의하는 사실이고, 나도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진단이 정확해야 고질적 망국병을 치료할 수 있다. 진단이 틀리면 환자가 낫기는커녕 병이 악화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의 망국병은 이미 중태이고, 병이 고황에 빠져 있는데 병세가 더 악화하면 환자는 위험하다.

윤석열 후보의 부동산 공약이 잘못된 이유는 현재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잘못 짚고 있기 때문이다. 윤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원인을 지나친 수요억제, 지나친 규제에서 찾고 있다. 그 자연적 귀결은 공급확대, 그리고 재개발, 재건축의 활성화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보수 진영에서 부동산 투기라는 망국병에 대해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진단은 수요억제책이 잘못 되었고,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눈 딱 감고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은 때로는 제자리걸음을 했다가 때로는 폭등했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폭등기에는 그 원인이 명백히 과잉수요 또는 투기적 수요이지 공급 부족이 아니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가격 급동은 공급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공급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장기적 상황에서다. 단기 폭등은 거의 전적으로 가격이 더욱 오르리라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를 실현시키는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 때문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요적 현상이지 공급적 현상이 아니다.

투기적 이익을 노리고 시장에 뛰어드는 대규모 수요, 과잉수요를 억제하는 수단은 세금과 규제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 확대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가 된다. 비근한 예로 참여정부 때도 보수 진영에서는 줄기차게 공급 확대를 외쳤고, 거기에 굴복하여 판교 신도시 개발 발표가 있었는데, 그 결과 부동산 가격은 더 올라가고 말았다. 말하자면 불난 집에 불을 끄는 방법은 물을 붓는 것이고, 그것이 수요 억제다. 불난 집에 장작더미를 더 던져주는 것이 공급 확대인데, 이는 일시적으로 불이 옆으로 번지는 속도를 늦출지 모르나 한탕주의를 더 확산시켜 불 끄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길을 더 거세게 만들 뿐이다.

수요 억제의 최선의 수단은 토지보유세다. 이것은 헨리 조지가 19세기 말에 주창한 이래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명제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던 김종인 경제학 박사는 "세금으로 부동산투기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는데, 그러면 귀하는 무엇으로 부동산투기를 잡을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불길이 심하게 붙었을 때는 부화뇌동 투기적 수요가 늘어나므로 대출 억제도 최선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방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이 가진 자 눈치를 보아 종부세 부담 완화에 주력하고 있음은 잘못된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근본적 이유는 정권 초기에 토지로 인한 불로소득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선언을 하지 않았고, 토지보유세를 강화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저런 미시적, 금융적 규제로 불을 끄려고 하다가 불길이 잡히지 않고 더 크게 번지자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종부세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시기적으로 이미 너무 늦었고, 시장의 신뢰를 잃고 난 뒤였다. 그 뒤로는 백약이 무효,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고, 부동산 불패 신화만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부동산 투기의 망국병을 치료하는 처방은 분명하다. 토지보유세 강화(단, 현금 없는 노인에게는 납세 연기), 그리고 공직자에게는 부동산 백지신탁(부동산 '백신'), 그리고 공급확대론이라는 미신에 속지 않을 것, 세 가지가 근본이다. 이정우(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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