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동갑 부부, 전통 되살려 마을에 활기 채웠다

입력 2021.09.27. 15:33 나윤수 기자
[지역소멸시대 '마을살리기'ㅣ영암 모정마을]
서울살이 김창오·김인순씨 30대 귀향
이장·부녀회장 맡아 마을 변화 주도
빼어난 월출산 풍광·오랜 역사 활용
사계절 축제 살리고 행복마을 선정
모정마을은 전통을 되살린 사는 재미를 추구하는 마을이다. 풍물단은 영암을 대표하는 풍물단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농촌마을의 가장 큰 위기는 대부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전남의 거의 모든 마을이 지역 소멸이라는 미증유 사태에 직면해 있다. 어디 한 곳 안전한 구석이 없다. 저출산 고량화의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다. 거의 모든 전남마을이 사라질 운명에 처하면서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쇠락해 가는 우리네 공동체 마을을 살리려는 부부의 노력이 작은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희망의 주인공은 쉰다섯 동갑내기 부부 김창오·김인순씨다. 서울 명문대 영문과 출신 남편과 국립대 수학교육과 교사 출신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터를 잡은 곳은 남편 김창오씨의 고향인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이다.

그들이 고향에 내려온 내력은 조금 독특하다. 그것도 30대에 귀향했으니 귀향치고도 꽤나 빠르다. 김창오씨가 고향 모정으로 내려온 데는 유별난 고향 사랑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쉽지 않다. 부부가 모정 마을로 귀향을 결심한데는 고향 마을의 빼어난 경치와 마을의 오랜 전통이 자리한다. 여기에 부인 김인순씨의 자연 친화적 성품도 모정리 귀향의 뒷배경이다. 김인순씨는 자연풍광이 뛰어난 광주 무등산 자락 고향 반지실 마을이 광주댐으로 수몰되는 아픔을 잊게 해준 기회의 땅이 모정이었다. 거기다 아이들만큼은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겠다"는 두 사람의 의기 투합도 부부를 모정마을로 이끈 이유중 하나였다.

모정마을 노을.

◆평야 위 섬 같은 모정마을

김창오씨는 자신을 들녘대학 출신에 마을 활동가, 지역 교육 운동가로 소개한다. "늙으신 어머니 수발과 어린 자식 교육을 위해 귀향했다"고 하나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모정 마을에 들어서면 조금씩 이해가 가능하다. 모정마을 풍경을 살피며 그가 얼마나 마을 변화를 위해 헌신했는지를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젊음을 바친 귀향을 이해하게 된다.

모정 마을 언덕배기에 서면 월출산과 은적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 햇살에 눈부신 탁 트인 들녘, 동쪽으로 남성적인 월출산과 서쪽으로 여성적인 은적산이 자리해 아마추어가 보더라도 절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모정마을 달맞이.

모정마을은 월출산과 은적산 중심에 자리해 떠오르는 월출산 해와 저문 은적산 달을 시리도록 볼 수 있는 천하 명당이다. 예부터 월출산 달맞이 하면 모정이요, 모정하면 월출산 달맞이 마을로 이름 높았다. 월출산 천황봉쪽에서 보면 넓은 평야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인다. 마을 동편에 큰 저수지가 마을 풍광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풍광이 뛰어난 데다 원풍정, 망월정, 쌍취정 등의 정자와 사권당, 삼호자문, 돈의재, 선명재 등 유서 깊은 고택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들어서 모정의 역사를 풍성하게 만든다.

김창오씨와 김인순 부부의 거처는 남편 탯자리인 월인당(月印堂)이다. 월인당은 100세터 명당에 자리한 전통한옥으로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의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누가 봐도 명품 한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월인당의 당호는 윌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 따왔다. 월인 천강은 "밝은 달이 모든 강을 고루 비춘다"는 뜻이니 월인당은 달을 보고 세상 시름을 잊고 싶은 이들에게 푸근한 보름달을 한껏 보여주는 곳이다.

500년된 이팝나무 아래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릴정도로 유명하다.

월인당을 더욱 빛내주는 것은 500년 된 이팝나무다. 100년 전 벼락을 맞아 거의 전소되다시피 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겉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에서 쌀밥 같은 꽃이 필 때면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하는 나무가 월인당 이팝나무다. 5월 중순 꽃이 필 때면 작은 음악회가 펼쳐질 정도니 우리나라 최고 이팝나무 위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을 전통 되살리는 재미 쏠쏠

부부가 고향 마을 모정에 정착하면서 마을은 빠르게 바뀐다. 남편 김창오는 마을 이장 겸 행복마을가꾸기 추진위원장을 맡아 모정 마을 가꾸기의 선봉에 섰고 부인 김인순은 부녀회장으로 모정마을 변신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의 마을 바꾸기는 품앗이, 두레, 울력 등 옛적 미풍양속을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농촌 마을이 활성화 되려면 상부상조하는 마을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러면서도 사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김창오씨는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삶에 재미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부인 김인순씨가 조직한 풍물단만 해도 그렇다. 모정마을 풍물단은 김인순씨가 직접 단장을 맡아 풍물전통을 되살렸다. 여기에 사계절 축제를 열어 줄다리기, 지신밟기, 강강 술래, 만두레 등 전통을 재연해 사는 재미를 더한다. 현재 모정 풍물단은 영암을 통틀어 거의 유일한 풍물단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고 모정 차회가 꾸려져 남도 차문화 원류를 찾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모정 축제는 단순한 마을 축제로 머물지 않는다. 매년 열리는 풍루 연꽃축제는 지난 2014년부터 시작돼 원풍정에서는 한바탕 걸쭉한 영암판 국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모정마을 앞 호수 연꽃.

모정 마을을 돌다 보면 한편의 마을 스토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찬란한 색의 향기에 취하다 보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어느 고을마다 내려오는 이야기는 있다. 그러나 모정 마을은 빼어난 경치에 마을 인물 이야기를 마을 벽화로 재연해 놓았다. 모정 마을 벽화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70∼80년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와 살라는 염원을 품고 있는 것이다.


◆'마을 되살리기'의 모범사례

마을 변화를 주도하던 부부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주민 삶의 질 향상에 눈을 돌린다. 원래 모정마을은 주변 농토가 넓고 수확이 풍족해 200여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하지만 우리 농촌을 덮친 지역 소멸의 위기는 모정마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위기감에서 나온 마을 되살리기가 '모정 행복마을 가꾸기'다.

2010년 1월 마을총회서 '모정행복마을 추진위원회'가 결성된다. 마을 혁신의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 김창오씨를 추진위원장으로 선출해 그들은 전남도가 추진하는 '한옥형 행복마을 대상자'선정에 온 힘을 기울여 3억원을 유치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그때 받은 3억원은 마을되살리기에 귀중한 마중물 역할을 해낸다.

모정마을 살리기 주인공 김씨부부.

김씨는 마을을 떠난 이들에게도 행복마을 사업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반응은 컸다. 모정이 펼치는 자연생태계복원과 주거환경개선, 교육, 생활문화, 복지 등은 비록 몸은 떠났지만 마음만은 함께 하겠다는 향우들이 줄을 이었다. 행복마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2014년 한옥 18동을 지은 것을 비롯해 마을 안길정비, 두레 체험관 건립, 수변 산책로 개설, 마을 숲 복원, 작은 도서관, 풍물단 결성, 마을 축제, 벽화 조성 등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망라돼 모정 마을은 어느덧 살고 싶은 마을로 변해갔다.

주목할 점은 마을 사업을 결정할 때 주민들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전남도청과 영암군청 등에서도 마을 사랑방 대화에 참여하게 하는 것도 지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도와 군은 그들의 민주적 결정에 마을 살리기의 미래를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모정 행복 마을 가꾸기는 도시의 경쟁적 삶에서 볼 수 없는 전통 상부상조 정신도 돋보인다. 그들이 설계하는 모정마을 디자인을 들여다 보면 '풍요롭지만 호사스럽지 않다', '전통이 살아있지만 배타적이지 않는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다' 등 그들만의 철학적 사고까지 담아내고 있다. 모정 행복 마을가꾸기는 도시에서 사라진 공동체적 즐거움을 함께 누리되 결코 과하지 않다. 그들만의 행복 추구 노력은 평가에도 박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전라남도 문화복지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3천 200개 마을을 대상으로 한 제5회 행복마을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해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인구 구조 변화 주목

쇠락을 거듭하던 모정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인구 구조부터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모정리 인구는 110호에 220명이 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 농촌의 고령화가 개선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모정마을 110호 중 40~50대가 20가구라는 점은 여느 마을과는 확연한 차이다. 30대 가구도 4가구나 있어 아이들 웃음소리가 되살아 나는 곳도 모정마을이다. 인생 2모작을 모정에서 살겠다고 5가구는 아예 삶의 터전을 옮겼고 다수 출향인사들이 내려올 의사를 보이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모정 마을 사례는 쇠락해가는 농촌을 되살리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마을이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 아이들도 유학과 농촌 삶을 체험중이다. 이 마을에는 현재도 6명의 청소년이 6개월간 농촌 삶을 몸소 체험중이다. 그들은 농촌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경쟁보다 서로 삶을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가를 학교 밖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모정마을 이야기'를 기록한 책.

◆마을 되살린 체험적 기록 '모정 마을 이야기'

쇠락해 가던 마을을 되살린 기록은 '모정 마을 이야기'로 탄생했다. 모정 마을 이야기는 한 젊은 청년이 젊음을 던져 마을을 되살린 체험적 기록이다. 마을을 되살린 체험적 기록에다 모정마을과 인근마을의 사라져 가는 역사를 조명한 것도 뜻깊다.

책에는 구림리, 동호리, 양장리, 검주리, 서호면 엄길리 등 이웃마을에 대한 역사적 탐색과 함께 영산강, 서호강, 은적산 같은 자연의 생태적 특성을 기록해 놓고 있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까지 조명하고 있다.

특히 김창오씨는 이 책에서 20년간의 추적 끝에 쌍취정의 연원을 찾아내 쌍취정(雙醉亭) 복원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평가받는다. 특히 모정마을 이야기는 마을 가꾸기를 위해 헌신을 다한 인물과 기부한 인물들의 세세한 행적까지 기록해 저자를 중심으로 모정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살려냈는지를 담담히 증언하고 있다. 저자인 김창오씨는 "책은 모정마을을 있게한 선조들과 마을주민, 향우들이 함께 쓴 기록이다"면서 "모정 마을이야기가 마을 공동체를 되살리는데 조그만 기여라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윤수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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