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도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이 되니 봐주면 안된다."
'시대의 풍운아', '진정한 어른'으로 불렸던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지난달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방송국 PD로 입사했다 박정희 정권의 제작 지시에 반발해 사직했다. 부친이 운영하던 강원도 삼척 광산업체를 물려받아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돈 버는 맛에 중독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또 유신정권의 앞잡이가 되기 싫어 자유인이 되고자 광산을 모두 정리하고 자산을 모두 광부들에 나눠줬다. 그 뒤 민주화 인사들에 은신처를 내어주고, 자금을 지원하며 세상에 기여했다. 한 평생 그는 돈과 권력을 경계했다.
뻔뻔한 꼰대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2019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내 남편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다, 단임제를 실시하지 않았느냐'는 망언을 한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에 대해 "민중이 다 분노해서 때려죽여야 할 악행을 무수히 저질러놓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사람이 균형감을 잃는다는 좋은 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나이 먹어보니 뻔뻔해지는 걸 안다. 나도 옳은 소리인 체하고 말할 째비가 안된다. 제발 나이먹으면서 부끄러움이라도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채현국 이사장은 그저 나이를 먹은 사람들을 가리켜 꼰대라고 한 것일까. 아니었다. 채 이사장은 "젊은 꼰대도 있다. 나이에 상관 없이 그 따위로 길들고 그 따위로 살고 자기가 기회만 있으면 마음대로 횡포하는 걸 예사롭게 하는 아주 비문명적인 야만적 사태다"고 했다.
그 원인에는 정답을 강요한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대 변화도, 부의 증가도 너무 빠른 변화 속에서 격돌하며 서로가 옳다고 여기며 정답만 쫓고 정작 존중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봤다. 정답이 아닌 해답을 얻으려면 현장에서 몸을 굴리며 땀 흘리고 고달플 때 드는 생각을 쫓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꼰대들을 향해 일침을 날린 채 이사장은 세상을 떠났고, 정권말 분위기를 타고 2030청년들의 시대가 벼락처럼 당도했다. 그렇지만 이미 '90년대생이 온다'는 책이 미래를 예견한 바 있다. 실제로 90년대생은 이미 와 있다.
벌써 30대가 된 90년대생은 사회 각 분야의 말단에서나마 소신행동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취재한 한 건설업자는 "70년대생까지만 일선 현장에서 물러나면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이 끝날 것이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반면 또다른 이는 "2030도 물들고 길들여지지 말란 법 있더냐"고 절하했다. 그런 와중에 채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60~70년대는 산업화를, 80~90년대는 민주화를 가치로 결집됐으나 지금 2030의 가치는 그야말로 다변화로 무엇 하나를 특정할 수 없다. 다변화로 인한 갈등도 심각하게 내포하며 벌써부터 우려스럽기도 하다. 기성세대를 대신할 2030이 단지 주도권만 넘겨받고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가치 없이 방황한다면 '잃어버린 시대'라는 비판을 살지도 모르겠다. 뒷세대로부터 '젊은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기성세대가 외면한 진실과 양심을 찾는 데 더 천착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서충섭 취재3부 차장대우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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