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향한 비난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매국노라느니, 인기영합주의라느니, 어리석은 자라느니 보수우익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에게 거센 반발을 샀던 그는 그러나 세계인들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길을 닦은 인물'로 꼽히고 있다.
1970년12월7일, 밤새 내린 비로 추적추적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이었다. 말끔한 차림의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털썩, 이내 두 무릎을 꿇었다. 젖어있는 바닥 따위는 중요치 않아보였다. 그렇게 30초간 양손을 맞잡은 그는 머리 숙여 용서를 구했다. 카메라 셔터가 빠르게 터졌다. 현장의 모습은 고스란히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당시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 전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의 유명한 일화다.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여전했던 냉전체제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던 브란트 총리가 나치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던 그 모습은 훗날까지 '평화와 양심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를 향해 전쟁 가해 국가로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지겠다는 선언이자 폴란드와의 영토 문제로 자국 내에서 반역자 등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있었던 그가 국민들에게 보내는 침묵의 메시지였다.
"말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던 50년 전 브란트 총리의 용기있는 사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어 주는 건 '그' 역시 사죄를 할 마지막 기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반성과 사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오는 22일 또 다시 피고인 없는 재판이 열린다.
이날 재판에는 1980년 당시 신군부의 핵심이자 군 지휘계통에 있는 인물인 전 계엄사령관 등의 증언이 예정되어 있다.
예단하기 이르지만 지난 40년간 늘 그랬듯 이날도 우리는 가해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골프와 초호화 만찬을 즐기는 삶을 살면서도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것은 힘에 부친다는 그를 대신해 재판장, 검사, 고발인, 변호인, 5월의 사람들은 진실의 조각을 맞추느라 애를 쓸 것이다. '재판의 희화화', 이 재판을 이끌고 있는 변호인의 표현이 다시금 가슴에 날아들 것 같다.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보여줬던 브란트 총리처럼 우리는 언제쯤 가해자의 용기있는 사죄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주현정 사회부 차장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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