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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입력 : 2019년 10월 10일(목) 14:34


주현정 무등일보 차장/뉴스룸 기획팀장
얼마 전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채널 중 하나인 BBC Two가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선정했다. ‘항상 자신이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이런 사람을 알고 있느냐?(Do you know someone like this?)’고 묻기도 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권위적이고 서열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꼬집어 일컫는 ‘꼰대’가 영국에 진출한 셈이다.

보도 이후 영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누리꾼들은 ‘결혼 후 내 남편’, ‘내 시어머니를 위한 단어’, ‘내 기억 속 엄마’, ‘나?’, ‘휴대전화 속 아빠의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반응까지 다양하게 공감을 표했다.

‘꼰대’를 직역하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세계 어디에나 꼰대는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얼마 전 국내의 한 온라인 매체도 ‘꼰대의 6하 원칙’이라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내가 누군 줄 알어(who)’, ‘나 때는 말이야(when)’, ‘어딜 감히(where)’ ‘네가 뭘 안다고(what)’, ‘어떻게 그걸 나한테(how)’, ‘내가 그걸 왜(why)’ 중 하나라도 입에 달고 사는 이라면 ‘당신은 꼰대’라고 지적했다.

뜨끔했다. 적어도 기자인 본인은 꼰대와는 무관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제시된 기준으로 따지면 영락없는 꼰대였기 때문이다.

기자는 종종 후배들과의 자리에서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들먹인다.

수습기자 6개월 동안 하루 겨우 4~5시간 자며, 선배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했다는 둥, 선배들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며 서열을 지켰다는 둥의 잡소리를 늘어대며 ‘니들은 좋은 시절 사는 줄 알아라’는 충고까지 해댔다. 그런 기자를 보며 ‘저 선배도 어쩔 수 없는 꼰대’라고 생각했었을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후배들아, 미안하다. 진심이다.)

기자 역시 하루에도 여러 번 꼰대 선배들에게 깊은 내적 빡침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후배들에게 꼰대질을 대물림 하고 있었다니.

‘꼰대질은 꼰대들에게만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번쩍 떠올랐다.

올 여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하면서 더욱 화제가 된 책이 있다. 꼰대들은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요즘 것’들의 이야기, ‘90년생이 온다’.

‘9 to 6’라지만 30분 일찍 출근해 30분 늦게 퇴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세대와 달리 “빨리 온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면서. 10분 빨리 출근했으니 퇴근 10분 전에 컴퓨터 끄고 문 앞에 서 있어도 되는건가”라고 반문하는 요즘 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솔직하지 않으면 철저히 무시하는, B급 코드에 열광하고 호갱이 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못 견뎌하는 90년대생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이다.